정도전은 조선의 건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철학자이다
봉화정씨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높은 지성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혁기에 고려와 조선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이성계와의 만남
함경도에 터를 잡고 있던 이성계의 숙소를 정도전이 방문하며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지방의 호족세력에 불과하던 이성계를 정권을 바꾸고 왕이 될 결심을 세우게 한 도 정도전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은 이런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고조와 장량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사라진 대부분의 국가의 말로가 그러하듯 고려말엽 왕권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한 상태였고 당대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전에게 고려는 없어져야할 국가였다.
당시의 철학자 중 정도전과 함께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던 정몽주는 이러한 상황에는 공감했으나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성을 지키고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서 훗날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의 대명사가 되었다.
위화도 회군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건국 당시 조선의 최초 왕으로서 태조 이성계는 건국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정도전에게 일임하였고 조선의 모든 제도, 법,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력을 끼쳤고 불교를 유교로 대체하고 수도를 이전 하였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경복궁을 설계한 것 역시 정도전이다.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봉건제를 중앙집권화된 관료제로 개편 하였다. 민본주의 사상을 통해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정치를 펼쳤으며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많은 노예들을 해방하고 일부 호족들에게 집중되어있다. 토지에 대한 개혁에 힘을 썼다.
이러한 정도전의 행보는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과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조선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정도전이 펼친 이러한 민본주의에 기반을 둔 조선은 왕은 그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고 관료들에 의해 이끌어가는 국가였다. 무관 출신인 이성계의 집안에서 이성계의 집권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이방원은 무관으로서의 아버지의 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왕권을 원했던 이방원과 정도전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사태였다.
정도전과 이방원 둘 모두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알고 있었다.
신덕여왕이 급사한 후, 이방원은 궁궐을 습격하여 자신의 형제와 정도전의 일당을 죽였다.
자신의 자식들과 아끼는 신하들을 죽인 이방원을 이성계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이방원이 정권을 잡은 이후 조선 건국에 크나큰 공을 세운 정도전은 조선의 역사내내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그는 조선의 역사에서 왕의 권력을 탐했던 탐욕스러운 정치가이자 철학자로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훗날 경복국을 설계한 공을 인정받아 복권할 수 있었다. 더불어 훗날 여러 철학자들에게 그의 이론들이 재조명 됨으로서 그의 저서들이 재편찬되기도 하였다.
현대에 들어 제작된 조선과 관련된 드라마 중 그의 이름을 딴 작품이 나올 정도로 정도전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극의 설정상 중요도의 차이는 있으나 끊임 없이 등장하며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후기 철학자 다산 정약용 (0) | 2023.04.23 |
---|---|
동아시아 철학 (0) | 2023.04.19 |
동양철학 (인도철학, 불교철학,이슬람 철학) 의 세계 (0) | 202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