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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춘은 삼국시대 말 고구려의 군인으로 유명한 안시성 전투의 안시성주이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 최강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당태종의 공격을 안시성에서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며 이 전투는 많은 매체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 되었다.

안시성

사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역사에는 기록되어있지 않고 민간에 의해 전해져 양만춘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양만춘은 강단이 있었던 인물로 당시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단 고구려 최고의 권력자인 연개소문에 반하여 연개소문의 공격도 받았으나 이 또한 버텨내었다. 

644년 당태종이 고구려 정복을 위해 5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는데 당시 당군은 애초부터 연개소문의 공격을 막아냈던 안시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우회활 것을 고려하였으나 보급로의 문제로 인해 안시성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우려대로 안시성이 함락되지 않자 60일에 걸쳐 안시성 보다 높은 토산까지 쌓으며 안시성을 공략하고자 했으나 폭우로 인해 토산이 허물어졌고 이 토산을 양만춘이 빼앗아 버리며 이를 저지하였다. 당군이 굳이 공을 들여 토산을 쌓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당군에게 수많은 승리를 안겨주었던 공성무기가 높은지대에 위치한 안시성을 상대로는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시성 함락이 쉽지 않자 다른 경로를 통해 평양으로 진군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고구려 군사들의 추격이 있을 것을 우려하여 결국 안시성을 먼저 공략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현대전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의 전쟁은 변화무쌍한 전략, 전술이나 강한 군대만큼이나 보급의 역할이 중요했다. 당시 중국의 많은 대군들은 침략전쟁을 할 당시 진을 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할 정도로 보급은 중요하게 여겨졌다. 앞선 글에서 이성계가 북벌을 반대했던 이유중 겨울이 문제라는 이유를 댔던 것도 보급과 관련이 있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칭키스칸이 이끌던 몽골군이 유럽까지 침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평소 유목생활을 하는 몽골군이 보급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도 큰 요인 중에 하나였다. 안시성 전투 당시 생각보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겨울이 다가오자 보급에 문제가 생긴 당나라 군은 결국 퇴각하게 되었다. 당시 당태종은 자신의 대군을 막아낸 안시성주를 칭찬하며 비단 100필을 내렸다고 한다. 

14세기경 고려의 시에 양만춘이 쏜 화살로 당태종의 눈을 맞혀 그가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동아시아 최강으로 당태종이 직접 이끌고 참략한 당나라의 대군을 사실 극동지방의 소국의 일개성주가 막아냈다는 것 만으로도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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