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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5만원권 화폐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고 최근에는 유튜버 '신사임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에 살았단 화가이자 시인으로 강원동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가인 오죽헌은 지금은 관광지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그녀는 현모양처를 설명할 때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조선의 유명한 학자인 율곡이이가 그녀의 아들로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사임당의 외조부는 어렸을 적 손자들과 똑같이 그녀에게 배움을 주었고 성리학은 비롯한 다양한 학문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문학, 시, 서예 그리고 그림 등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여주었다.

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미지와 다르게 결혼 후에도 처가에서 생활하였고 그의 남편 이원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결혼후에도 친가에서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활동은 특별한 제약이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신사임당과 이원수 부부는 다복하여 5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두었고 그 중 셋째 아들이 율곡 이이였다.

신사임당이 알려진바와 다르게 순종적인 현모양처 상은 아니었다는 일화가 여럿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남편을 관직에 들게 하기위해 공부에 저념하게 하고자 그를 산으로 보내고 그가 애내를 그리워해 돌아오자 그를 꾸짖고 돌려 보냈다. 또한 그녀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남편에게 절대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신사임당이 46세의 비교적 어린나이로 급사하자 그의 남편인 이원수는 자신의 첩이었던 권씨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게되어 자식들과 갈등을 빚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여자들은 배움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결혼 후에는 남편에 대한 뒷바라지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으나 앞서 밝혔듯이 신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친가에서 생활함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그녀의 그림 실력은 무척 뛰어나 그녀가 그린 꽃 그림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는 등의 일화가 유명하다. 그녀의 그림은 현재 40여점 정도가 남아있지만 그 외에도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이 다수 존재한다. 

같은 조선시대의 여류작가로서 허난설헌과 자주 비교되어지며 라이벌로  여겨진다. 그녀의 말년또한 남편으로 인해 그리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식의 성공 등으로 인해 허난설헌에 비해 역사적으로 크게 평가 받았으며 허난설헌에 말년에 비해서는 행복했다고 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도 5만원권 화폐에 얼굴이 새겨지는 등 대중적으로 더욱 알려진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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