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왕후는 조선의 26대 마지막 왕인 고종의 왕비로 그녀 역시 조선의 마지막 왕비가 된다.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인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의 친모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제 침략기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어 극적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서 그녀를 소재로한 유명한 명성왕후 뮤지컬로도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는 후에 흥선대원군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게 되지만 흥선대원군이 직접 간택한 왕비였다. 이유는 명문가의 자제로 어렵게 왕위에 오른 고종의 배경이 되어줄 가문출신이긴 하나 외척 세력이 될만한 종친들이 많지 않았음으로 자신이 섭정을 하는데 있어서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권력을 잡는데 도움을 줬던 안동김씨 집안의 여식을 왕비로 간택하기로 약속을 했으나 이를 뒤집고 명성왕후를 간택하게 된다 하지만 똑똑하고 야망이 있던 명성왕후는 후에 이를 역이용하여 안동김씨와 결탁하고 최익현 등의 도움을 받아 흥선대원군을 권력에서 몰아내게 된다.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을 몰아내고 고종의 친정을 유도한 과정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뛰어난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간택되는 과정에서 등을 돌린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있던 안동김씨 일가와 조대비의 친족과도 힘을 모았고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지않던 그의 형 흥인군 그리고 서원철폐로 인해 흥선대원군에게 등을 돌린 유학자들을 모두 포섭하였다. 이 과정에서 최익현으로 하여금 흥선대권군을 규탄하는 상소를 쓰게하고 그의 뒤르 봐주었다. 이로인해 흥선대원군은 퇴진하게 된다. 이때 최익현을 위하여 그를 잠시 유배보내 흥선대원군의 세력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고 후에 다시 그를 복귀 시켰다.
명성왕후는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반대로 적극적으로 개화정책을 펼치게 된다. 선교사들과도 가깝게 지냈으며 개화파들을 대거 등용하여 적극적으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명성왕후는 수많은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금이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명성왕후를 비롯한 민씨 집안들은 부정부패를 통해 자금을 모으게 되고 극단적으로 구식문물에 대한 무시를 하게된다. 이로인해 구식군대가 임오군란을 일으키고 명성왕후는 죽을고비를 넘기고 흥선대원군이 재집권을 하게 된다. 이 때 흥선대원군은 명성왕후의 시신을 찾지도 못하였지만 그녀가 죽었다고 발표하고 국상까지 치르게 된다. 이후 청나라의 도움으로 복귀한 명성왕후는 끊임없이 흥선대원군 세력과 대립하게 된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인 낭인들에 의해서 경복궁에서 죽임을 당하고 사체에 석유를 뿌려 불태워졌다. 이에 놀란 고종이 흥선대원군을 불러들이게 되고 흥선대원군은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 명성왕후는 사후에 일본의 압력으로 인해 폐위된 것으로 처리되었으나 후에 고종이 빈으로 복직하였고 훗날 한나라의 왕비를 살해한 만행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왕후로 복직되었다. 이 때 재판이 열리고 당시 사건에 가담한 일본의 낭인들은 재판을 받게 되었으나 형식적인 것이었고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나게 된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왕후의 죽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자료는 없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모두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강하게 나왔던 명성왕후를 제거하고 싶어했다. 이에 명성왕후의 죽음을 바랬던 자들이 협력자로 지목되었다. 바로 유길준과 흥선대원군이다.
명성왕후의 죽음은 유명한 뮤지컬 등에서 다소 자극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현재 알려진 당시의 상황들도 모두 추측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당시 현장을 목격한 모두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성왕후는 그녀의 참혹한 죽음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많은 동정표를 얻었지만 그냐가 정치를 행함에 있어 수많은 잘못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은 대부분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그녀가 훈에 순종이 되는 아들을 위해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제사를 지내며 국고를 탕진하고 매관 매직을 통해 부정부패를 촉발 시켰으며 매관 매직을 통해 관직에 오른 자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짰고 개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가중시켜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던 시기에 백성들로 하여금 수많은 원성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시아버지였던 흥선대원군과는 다르게 개화정책을 펼치고 외세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부분은 훌륭한 평가를 받을만 하다. 또한 흥선대권은을 몰아내고 고종을 왕으로서 제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자신을 위협하던 여러 사건들을 극복해내는 과정은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똑똑한 인물이었는지를 예상할 수 있으나 이렇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이 깨끗하지 못했다. 반대로 내정개혁에는 훌륭한 모습을 보였으나 외교에서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사이가 좋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https://chamingshu.tistory.com/entry/%ED%9D%A5%EC%84%A0%EB%8C%80%EC%9B%90%EA%B5%B0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은 잘 알려진대로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아버지이다.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은 이후 강화도에서 노비처럼 살고 있던 왕족을 불러와 왕위를 이은 것이 철종이라는 것은
chamingshu.tistory.com
고종(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역사적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왕이다. 조선말 강대국들의 침략속에서 우유부단한 대처로 결국 조선을 망하게 만든 암군이라는 평가와 극심한 변혁기에 유연하게 신문물을 받아들
chamingshu.tistory.com
'역사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종 (조선의 불운한 왕) (2) | 2023.06.10 |
---|---|
연산군(조선의 폭군) (0) | 2023.06.03 |
흥선대원군 (2) | 2023.05.28 |
고종(조선의 마지막 왕) (0) | 2023.05.26 |
의자왕 (0) | 2023.05.24 |